여행은 설렘으로 시작한다. 새로운 풍경, 음식, 언어, 사람들… 하지만 그 가운데 우리를 가장 강하게 자극하는 건 예상하지 못한 문화의 차이, 즉 문화 충격이다. "그럴 수도 있지" 하며 넘기기도 하고, 때로는 당황하고, 불편하고, 심지어 혼란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그 순간들이야말로 진짜로 그 나라를 이해하기 시작하는 순간이었다고, 나는 믿는다. 오늘은 내가 여행 중 마주했던 예상하지 못했던 문화 충격들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한다. 웃기고, 어리둥절하고, 때론 진지했던 그 순간들. 결국엔 내 안의 ‘당연함’을 무너뜨리고, 새로운 시선을 만들어준 중요한 경험들이다.
1. 일본 – 조용한 사람들, 조용한 전철, 너무 조용한 나라
처음 일본을 찾았을 때, 나는 설렘보다 긴장감을 먼저 느꼈다. 공항에서부터 줄을 서는 방식, 계단에서 걷는 위치, 인사하는 방식, 모든 것이 너무 정확하고, 조용하고, 질서 정연했다. 그리고 가장 강하게 문화 충격을 느낀 순간은 도쿄 지하철을 탔을 때였다.
“전철 안은 마치 도서관 같았다”
출근 시간, 도쿄역에서 신주쿠까지 향하는 지하철. 사람들로 꽉 찼지만, 그 안은 정말 놀랄 만큼 조용했다. 한국이었다면 핸드폰 통화, 친구와의 수다, 배경음악 정도는 들렸을 텐데, 이곳은 마치 입을 열면 안 되는 공간 같았다. 심지어 옆 사람의 숨소리나 기침 소리가 너무 또렷하게 들려서 민망할 정도. 나는 처음엔 당황했다. 이어폰을 꽂을까 하다가, 그마저도 방해가 될까 싶어 그냥 그대로 서 있었다.
나중에 알게 됐다. 일본에서는 공공장소에서의 사적인 소음이 극도로 금기시된다는 걸.
전화 통화는 물론이고, 너무 큰 웃음소리조차 ‘무례한 행동’으로 받아들여진다는 사실. 처음엔 답답하게 느껴졌다. ‘왜 이렇게까지 조용해야 하지?’라고 생각했지만, 며칠 뒤 나는 어느새 나도 조용해진 걸 느꼈다. 그 조용한 전철 안에서, 나는 내 주변을 더 관찰하게 되었고, 나의 말과 행동을 더 돌아보게 되었으며, 무심코 내뱉던 말들에 대해 한 번쯤 생각해보게 됐다. 문화 충격은 불편함으로 시작했지만, 결국엔 ‘타인을 배려하는 방식’의 차이라는 걸 깨달았다.
2. 프랑스 – ‘불친절’이라 불리던 것의 진짜 의미
프랑스 파리는 로망이 많은 도시다. 에펠탑, 루브르 박물관, 몽마르트 언덕…
하지만 여행 초반, 나는 그 로망보다 “왜 이렇게 무뚝뚝해?”라는 불쾌함이 먼저 다가왔다. 특히 카페나 상점, 기차역에서 만난 직원들은
내가 질문을 할 때 대부분 미소 없이, 짧고 간결하게 대답했다. 심지어 영어로 말하면 일부러 못 들은 척하는 경우도 있었다.
몽마르트의 한 작은 빵집에서 프랑스어를 몰랐던 나는, 영어로 "Excuse me, can I get this one?"이라고 말했다.
점원은 내 말을 듣고도 아무 반응이 없었다. 나는 두 번 반복했고, 그제야 그가 "Bonjour는 안 하시나요?"라고 말했다.
처음엔 무안했고, 그 다음엔 화가 났다.
‘내가 뭘 잘못했다고?’ 싶었다.
그런데 며칠 뒤, 나는 알게 되었다. 프랑스에서는 상점에 들어가면 반드시 Bonjour(안녕하세요)로 인사를 건네는 것이 ‘예의’라는 걸.
그건 단지 형식적인 말이 아니라, "나는 당신을 손님이나 점원이 아니라, 하나의 인간으로 존중하고 있어요."라는 뜻이었다.
문화 충격은 오해에서 시작된다. 한국에서는 고객이 ‘을’이고, 판매자가 ‘갑’이라는 문화가 있지만 프랑스에서는 ‘인간 대 인간’으로의 인사와 존중이 먼저였다. 그들은 불친절한 게 아니었다. 단지 서로를 대하는 기본 전제가 다를 뿐이었다. 이후 나는 카페에 들어가서 “Bonjour!”라고 먼저 인사를 건넸고, 그 순간 직원들의 표정이 확연히 달라지는 걸 느꼈다. 짧은 인사 하나가 만들어내는 온도 차이. 그게 바로 프랑스식 ‘정중함’이었다.
3. 베트남 – 거리에서 일어나는, 너무 가까운 관계들
베트남 하노이는 굉장히 역동적인 도시다. 오토바이가 도로를 가득 메우고, 골목마다 포장마차와 사람들로 붐비며, 거리 곳곳에서 다양한 향기와 소리가 뒤섞인다. 처음 그 거리로 나섰을 때, 나는 마치 혼란 속에 던져진 한 조각 같았다. 그중 가장 놀라웠던 건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 그리고 관계 맺기의 방식이었다.
"당신 이름은 뭐예요? 결혼했어요?"
하노이 올드타운 골목을 걷고 있을 때, 노점 아주머니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한국 사람? 이름 뭐야? 몇 살? 결혼했어?”
처음엔 농담인가 싶었지만, 정말로 궁금해서 묻는 것이었다. 그리고 계속되는 질문들에 나도 모르게 웃으며 답을 하고 있었다. 처음엔 사생활을 너무 쉽게 묻는다는 불쾌감이 들었지만, 나중엔 그것이 그들의 친근함의 방식이라는 걸 알게 됐다. 그들은 사람을 알아가기 위해 먼저 벽을 허무는 것 부터 시작했다. 하노이에서 길거리 의자에 앉아 로컬 커피를 마시던 어느 날, 옆자리 아저씨가 내 컵에 얼음을 더 넣어주었다.
"덥죠? 이게 더 시원해요."
그는 친구가 아니었고, 종업원도 아니었다. 그저 그 자리를 공유하고 있는 또 하나의 여행자였다. 그날 이후, 나는 길거리 좌판에서 서로 아무 말 없이 웃음만으로 이어진 관계들이 얼마나 따뜻하고 자유로운지 알게 되었다.
문화 충격은, 진짜 여행의 시작이다. 여행을 하며 가장 인상 깊은 순간은 유명한 관광지를 봤을 때가 아니었다. 맛있는 음식을 먹었을 때도, 멋진 숙소에 도착했을 때도 아니었다. 그보다 더 깊게 남는 건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어색함과 당황스러움, 그 속에서 내가 얼마나 다른 시선으로 세상을 보고 있었는지를 깨달은 순간들이다. 일본에서는 침묵이 말보다 배려가 될 수 있다는 것을, 프랑스에서는 한 마디 인사가 서로를 인간으로 연결시켜준다는 것을, 베트남에서는 가까움이 반드시 무례함은 아니라는 것을 배웠다.문화 충격은 불편함으로 시작되지만, 그 끝엔 늘 이해와 존중, 그리고 더 넓은 시선이 남는다. 여행의 진짜 시작은, 가방을 푸는 순간이 아니라 내가 쥐고 있던 ‘상식’을 내려놓는 순간이 아닐까? 여행을 하며 가장 인상 깊은 순간은 유명한 관광지를 봤을 때도, 맛있는 음식을 먹었을 때도, 우연히 찍은 인생샷을 발견했을 때도 아니었다. 진짜로 오래 남는 순간은, 내가 그 나라에 대해 알고 있다고 믿었던 것들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나는 일본의 조용함이 처음엔 부담스럽고 낯설었다. 하지만 그 고요함 속에서 내가 얼마나 무심하게 소음을 일상화해왔는지를 되돌아보게 됐다. 그리고 타인을 배려하는 방식은 ‘침묵’일 수도 있다는 걸 깨달았다. 프랑스에서는 인사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외면당했다. 처음엔 불친절하다고 느꼈지만, 그들의 방식은 사실 인간적인 예의를 먼저 묻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그 인사는 단순히 말이 아니라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는 따뜻한 의식이었다. 베트남에서 사람들은 너무 빠르게 다가왔다. 이름을 묻고, 나이를 묻고, 내 옆자리에 앉았다. 불편할 틈도 없이 웃고, 건네고, 나누었다. 그제야 나는 알았다. 그곳에서는 관계가 거창한 설명이나 포장 없이도 시작될 수 있다는 것을. 이 모든 충격은 처음엔 혼란이었고, 그다음엔 질문이었고, 끝내는 깨달음이 되었다. 그리고 그 깨달음은 나를 조금 더 겸손하게 만들었고, 내가 가진 편견의 모서리를 둥글게 다듬었다.
여행이란 결국, 세상이 얼마나 다양한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는지를 몸으로 겪고 마음으로 배워가는 일이다.
나는 이제 알게 되었다. ‘문화 충격’이라는 단어는 불편함이 아니라, 변화의 출발점, 시야가 넓어지는 문턱, 그리고 다른 세계와의 조우가 만들어내는 가장 진솔한 순간이라는 걸. 그러니 다음 여행에서도 나는, 새로운 충격을 기대할 것이다. 익숙하지 않은 예절을 마주할 때, 전혀 다른 생활 방식 앞에서 멈칫할 때, 그 안에서 나는 또 한 번 성장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왜냐하면 여행은 결국, 타인을 이해하는 연습이자
내 자신을 확장시키는 가장 인간적인 방식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