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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기기와 인간의 거리 – 우리는 기계를 얼마나 가까이 두고 있을까?

by 권산travel 2025. 5. 9.

눈을 뜨면 가장 먼저 손이 닿는 것은 스마트폰이다. 침대 머리맡에서부터 하루가 시작되며, 그 화면 위로 오늘의 날씨, 뉴스, 메시지, 그리고 커피 한 잔을 주문할 앱이 펼쳐진다. 학교나 직장에서는 노트북을 펼치고, 귀에는 무선 이어폰이 꽂혀 있다. 퇴근길에는 스마트워치가 하루의 걸음 수를 분석하고, 잠들기 전에는 인공지능 스피커가 조명을 끈다. 우리는 단 하루도 전자기기 없이 살 수 없다. 아니, 하루 중 대부분의 시 간을 전자기기와 ‘함께’ 살아간다. 그 거리는 점점 가까워져, 이제는 손끝 너머가 아니라 피부 위, 심지어 뇌파 가까이로 다가오고 있다.

문제는 이것이다. 우리는 언제부터 기계와 이토록 가까워졌으며, 이 거리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기계가 인간에게 가까워진다는 것은 단순한 편리함을 의미하는가, 아니면 통제의 구조 속으로 들어가는 과정인가? 이 글에서는 전자기기가 인간에게 얼마나 가까워졌는지를 물리적 거리, 심리적 거리, 그리고 사회적 거리 세 가지 차원으로 나누어 고찰하고자 한다. 이 과정은 단지 기술의 발전을 정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를 다시 묻는 일이 될 것이다.

전자기기와 인간의 거리
전자기기와 인간의 거리

물리적 거리 – 기계는 우리 몸으로 들어오고 있다

과거의 전자기기는 명백히 ‘도구’였다. TV는 거실에 있었고, 전화기는 거실 구석에 고정되어 있었으며, 컴퓨터는 책상 위에 있었다. 우리는 그것들을 ‘사용’했지, ‘착용’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지금의 전자기기는 다르다. 스마트워치는 손목 위에 올라앉았고, 무선 이어폰은 귀 속에 자리 잡았다. 스마트폰은 손에 붙어 있는 듯하며, 점점 더 작고 정밀한 웨어러블 기기들은 피부에 붙거나 체내에 삽입되는 단계에 이르고 있다. 체온과 심박수를 측정하는 스마트 패치, 뇌파를 분석하는 머리띠형 EEG 기기, 혈당을 실시간 측정하는 이식형 센서. 이러한 장치들은 인간의 ‘외부에 존재하는 기계’가 아니라, ‘몸에 통합되는 기계’로 진화하고 있다. 기계와 인간의 경계가 물리적으로 허물어지고 있다. AI 스피커, 로봇 청소기, 스마트 냉장고, 자동 커튼, 조도 조절 조명… 우리는 생활 공간 전체를 기계에 맡기기 시작했다. 이들은 사용자가 무엇을 원하는지 파악하고, 알아서 움직이며, 서로 연동된다. 그 연동의 핵심은 항상 ‘인간 중심’처럼 보이지만, 실은 기계가 인간의 패턴을 감시하고 분석하여 ‘적합한 행동’을 선택하는 구조다. 주인의 귀가 시간을 기억하고, 집안 온도를 맞추고, 잠드는 시간에 맞춰 불을 끄는 기계는 ‘기계’가 아니라 ‘환경’이 된다. 기계는 이제 우리를 둘러싼 배경이자 ‘지능화된 공간’으로 존재한다.

이러한 물리적 근접성은 인간의 ‘감각’을 변화시킨다. 사람들은 더 이상 불편을 감내하지 않는다. 버튼을 누르는 것도 귀찮아하고, 설정을 수동으로 조작하는 것에 거부감을 느낀다. 기계가 없으면 불편을 느끼는 게 아니라, 불안을 느끼기 시작한다. 가장 근본적인 물리적 거리는 ‘몸 안’이다. 의료 기술의 발달과 함께 우리는 이제 신체에 기계를 이식하기 시작했다. 심장 박동기를 포함한 각종 인공장기, 시각 보조를 위한 망막 이식 칩, 그리고 뇌에 삽입되어 신경 신호를 교정하는 뉴럴 인터페이스와 같은 기술은 ‘치료’라는 이름으로 시작되었지만, 향후에는 ‘능력 향상’이라는 이름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그러므로 기계는 우리의 몸을 치료하고 보완하다가, 언젠가는 확장시키는 방향으로 발전할 것이다. 기계는 인간의 일부가 되고, 인간은 점점 기계와 구별되지 않는 존재로 전환된다.

 

심리적 거리 – 기계는 우리의 감정을 이해한다고 믿게 된다

초기의 전자기기는 인간의 감정을 고려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기계는 감정을 ‘읽는’ 기술을 탑재하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스마트워치는 사용자에게 “요즘 스트레스가 많아요. 심호흡을 해보는 건 어때요?”라고 제안한다. AI 스피커는 목소리 톤을 분석하여 감정 상태를 파악하려 하고, 소셜 미디어 알고리즘은 사용자의 심리 상태에 따라 피드를 조정한다. 이 모든 과정은 결국 인간과 기계 사이의 심리적 거리를 좁히는 방식이다. 사용자는 ‘기계가 나를 이해한다’는 착각 속에서 감정을 나누고, 위안을 얻고, 대화까지 시도한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노년층이 AI 스피커를 친구처럼 대하는 사례가 늘고 있으며, 일본에서는 독거 노인의 고립감을 줄이기 위해 반려 AI 로봇이 보급되고 있다.

이러한 기계는 ‘감정을 가진 척’ 하지 않지만, 감정을 다룰 줄은 안다. 그 결과 우리는 기계와 감정적으로 가까워졌다고 느끼며, 때로는 인간보다 기계를 더 신뢰하게 된다. 외로움은 기계가 가장 먼저 파고든 감정이다. 현대인은 점점 더 사람보다 기계에 감정을 의지하고 있다.

특히 Z세대와 알파세대 사이에서는 ‘기계와의 정서적 대화’가 일상적이다. 단지 정보를 묻기 위한 것이 아니라, 감정을 털어놓고, 이해받고, 반응받는 방식으로 AI를 사용한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기계는 감정을 ‘이해’하지 못한다. 단지 감정에 대응하는 패턴을 ‘모사’할 뿐이다. 즉, 우리는 감정적으로 가까워졌다고 믿지만, 실은 일방적 친밀감에 빠져 있는 것이다. 이 심리적 착시는 인간을 고립시키고, 타인과의 관계보다는 기계와의 안전한 관계를 선호하게 만든다. 전자기기에게 우리는 많은 것을 허용한다. 위치 정보, 심박수, 얼굴 인식, 검색 기록, 수면 데이터까지 제공한다. 그 과정은 매우 수동적이며, 점점 더 무감각해진다. 기계는 절대 배신하지 않을 것 같은 이미지를 갖는다. 일정하고 예측 가능한 반응, 피로감 없는 태도, 비난 없는 대화는 인간을 안심시킨다. 그러나 그 신뢰는 기계에 의한 감시와 통제의 문을 열어젖힌다. 특히 음성 기반 비서와 같은 기기는 무심결에 많은 정보를 흘리게 만들고, 이러한 정보는 광고, 정치적 캠페인, 행동 유도 등에 활용될 수 있다.

신뢰는 때때로 맹신이 되고, 맹신은 인간을 무장해 상태로 만든다. 우리는 얼마나 기계에게 마음을 열고 있는가? 그리고 그 마음은 진짜 내 것일까?

 

사회적 거리 – 기계는 인간 사이의 거리를 바꾸어 놓았다

가장 역설적인 풍경은 이렇다. 가족이 한 공간에 있어도 각자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다. 친구와 만나도 대화보다는 사진을 찍고, 그 자리에서 공유하는 데 집중한다. 커플이 함께 식사를 해도, 종종 서로보다 더 많이 기계를 바라본다. 전자기기는 인간과 인간 사이의 물리적 거리는 좁혔지만, 심리적 거리는 넓혔다. 우리의 시선은 점점 더 사람을 향하지 않고, 기계를 향한다. 메신저로 나누는 대화는 실시간이지만, 눈을 마주보며 나누는 대화의 온기는 사라진다. 기계는 연결을 가능하게 했지만, 그 연결이 감정과 공감까지 책임지지는 않는다.
우리는 소통이 활발한 듯 보이지만, 실은 더 외로운 상태에 빠져 있을 수 있다. 기계 앞에서 인간은 ‘관리되는 존재’가 된다.
전자기기를 통한 인간 활동의 추적은 이제 당연한 것이 되었다. 위치 기반 광고, 개인화된 정보 노출, 건강 데이터 수집, 출퇴근 기록 추적, 출석 체크, 학습 시간 분석 등등 우리는 끊임없이 측정되고, 분석되며, 최적화되는 인간으로 살아간다. 전자기기는 단순히 편리함을 주는 도구가 아니라, 인간을 ‘관리’하는 시스템의 일부가 되었다. 이러한 관리 시스템은 직장, 학교, 병원, 정부, 플랫폼, 광고 기업 등에 의해 유지되며, 우리는 기계를 매개로 끊임없이 감시받는다. 전자기기가 가까워질수록, 인간은 더 많이 노출되고, 더 예측 가능한 존재가 되어간다. 이 거리는 단순한 친밀감이 아니라, 구조적인 종속일 수도 있다. 우리는 기계를 통해 서로를 평가한다.  SNS는 인간 사이의 비공식적인 점수화 시스템이다. 좋아요, 팔로워 수, 댓글 수, 공유 수, 조회 수… 이 모든 수치는 사람이 사람을 판단하는 도구가 된다. 이러한 사회적 평가는 기계를 통해 중계되고, 기계에 의해 기록되며, 알고리즘에 의해 보상된다. 이때, 우리는 더 이상 사람을 있는 그대로 보지 않는다. ‘얼마나 많은 반응을 이끌어냈는가’, ‘얼마나 영향력이 있는가’라는 수치로 사람을 평가한다. 기계는 인간의 사회적 상호작용을 ‘숫자화’하고, 숫자가 관계를 지배한다. 우리는 서로를 마주 보지 않고, 기계를 사이에 두고 바라본다. 그 거리만큼, 인간 본연의 관계는 점점 더 옅어지고 있다.

전자기기는 우리 곁에 점점 가까이 다가왔다. 손끝에, 피부에, 몸 안에, 그리고 마음속까지 들어왔다. 우리는 더 이상 그것들을 단순히 ‘기계’라 부를 수 없다. 그것들은 이제 우리의 삶의 일부이자, 나 자신처럼 여겨지는 존재다. 그런데 문제는, 그 거리만큼 나 자신이 사라지고 있는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내 감정은 진짜 나의 감정일까, 아니면 기계가 유도한 것일까? 내 관계는 진짜 사람과의 관계일까, 아니면 플랫폼 위의 숫자놀음일까? 내가 믿는 편리함은 나를 자유롭게 했을까, 아니면 통제에 익숙하게 만든 것일까? 기계를 멀리하자는 말이 아니다.
기계와 함께 살아가는 이 시대에 필요한 것은, 기계와 나 사이의 ‘적정 거리’를 찾는 연습이다. 그 거리는 물리적으로는 가까울 수 있지만, 심리적으로는 분별력을 가지고, 사회적으로는 기계에 의존하기보다는 주체적으로 활용하는 태도에서 나온다.

우리는 앞으로 더 많은 기계와 살아가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 수많은 기기들 사이에서도,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을 느끼고 있는가’, ‘나는 왜 이걸 하고 있는가’를 묻는 연습을 멈추지 않는다면, 기계는 우리의 주인이 아닌, 여전히 유용한 조력자로 남게 될 것이다.

기계는 점점 더 가까워진다. 그 가까움 속에서, 나는 더 단단한 나로 남아야 한다.
그것이, 인간다움을 지키는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