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원을 끄는 순간, 세상은 멈출까? 우리는 언제 마지막으로 스마트폰을 손에 들지 않은 하루를 보냈을까?
대부분은 그 질문에 쉽게 대답하지 못할 것이다. 눈을 뜨자마자 핸드폰을 확인하고, 버스를 기다리며 유튜브를 보고, 점심시간엔 인스타그램을 넘기고, 퇴근길엔 음악을 듣는다. 밤에는 그날 쌓인 알림을 정리하며 잠든다. 그리고 다음 날이 시작된다. 전자기기는 이제 단지 도구가 아니다. 일상 그 자체이며, 사회와 연결되는 유일한 끈이며, 나 자신을 설명하는 거울이기도 하다. 그래서 전자기기 없이 하루를 살아보겠다는 결심은 단순히 기술에서 벗어나는 일이 아니다. 그것은 내가 가진 시간의 구조, 주의력의 흐름, 존재의 방향성 자체를 재정비하겠다는 선언이다. “하루만 전자기기를 끄면 얼마나 달라질까?” “나 없이 세상은 잘 돌아갈까?” “혹시 세상 없이 내가 더 잘 돌아가진 않을까?”
이 질문은 호기심이었고, 도전이었고, 실험이었다. 그리고 그 실험은 아주 느리게, 그러나 강하게, 나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었다. 이 글은 하루 동안 전자기기를 모두 꺼놓고 생활하며 느낀 경험을 바탕으로 한다. 디지털 공백 상태가 나에게 어떤 변화와 깨달음을 가져왔는지 상세히 기록해본다.
시간의 재발견 – 시계 없는 하루의 리듬
스마트폰이 사라지자, 시계도 사라졌다. 하루를 전자기기 없이 보내겠다고 결심한 날 아침, 가장 먼저 직면한 것은 시간의 부재였다.
알람 시계를 쓰지 않으니 정해진 기상시간은 없었다. 침대에서 눈을 떴을 때, ‘지금이 몇 시인가’라는 감각을 정확히 알 수 없었다. 스마트폰은 시계 기능을 넘어선 존재다. 시간을 알려줄 뿐 아니라, 하루의 구조를 계획하고 알람과 일정으로 흐름을 통제해준다.
그 스마트폰이 사라진 하루는, 마치 시간이라는 강에서 나침반을 잃고 떠도는 것 같았다. 그날 아침 나는 시계를 보지 않고 행동했다.
햇빛의 각도, 배고픔의 정도, 창밖의 사람들 옷차림으로 시간대를 추정했다. 그리고 놀라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생각보다 시간 감각이 정교하며, 기계 없이도 하루의 흐름을 직관할 수 있다는 것. 디지털 시계는 1분 1초를 정확히 알려준다. 그 정확성은 생산성과 연결되며, 우리의 일상을 ‘할 일’ 중심으로 구조화한다. 하지만 스마트폰 없이 하루를 살면, 시간은 더 이상 단위가 아니라 분위기가 된다. 아침 햇살이 창문을 따라 들이치는 시간, 따뜻한 차 한 잔이 익는 속도, 걷는 동안 들리는 발자국 소리, 조용히 앉아 글을 쓰다 종이 냄새가 바뀌는 순간
이런 시간들은 수치화할 수 없고, 측정할 수 없지만, 그 자체로 감각적이고 실재적이다. 기기가 없으니, 시간이 나를 밀어붙이지 않았다. 나는 시간을 따라가는 사람이 아니라, 시간을 느끼는 사람이 되었다. 그날 하루 나는 일도 하지 않았고, 일정도 없었고, 메모도 하지 않았다.
사람들과 대화도 거의 하지 않았으며, 검색이나 탐색도 하지 않았다. 즉, 기계 없이 보낸 하루는 통계적으로 아무것도 남기지 않은 하루였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 하루는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다. 나무 그림자를 따라 움직이며 길을 걷던 장면 종이책을 읽다가 졸린 채 그대로 베개에 머리를 기대던 순간 찻물 끓는 소리와 함께 창밖을 바라보며 멍하니 있던 시간 이런 시간들은 기계가 만들어주는 ‘기록된 시간’은 아니지만,
삶의 감도와 촉감을 되찾아주는 ‘내적인 기억’으로 새겨졌다.
주의력의 해방 – 산만함이 걷히고 나면
알림이 없는 세상, 처음엔 불안했다. 처음 3~4시간 동안 가장 강렬하게 다가왔던 감정은 불안이었다. 지금 카카오톡에 중요한 메시지가 와 있을지도 모른다는 불안했고 업무용 이메일에 답장이 늦어지면서 무책임하게 보일까 두려운 감정이 들었다. 친구가 약속 장소를 바꿨을지도 모른다는 걱정도 했고 SNS에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닐까 하는 막연한 궁금증도 생겼다. 사실 대부분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전자기기를 끄는 순간, 나는 내가 ‘항상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는 착각’ 속에 살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 착각이 나를 끊임없이 집중하지 못하게 만들고 있었다는 것도. 기기는 우리에게 정보만 제공하지 않는다. 반응을 유도하고, 생각의 결을 끊고, 주의력을 조각낸다.
그리고 나는 그걸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전자기기가 없는 하루의 오후, 나는 책을 읽었다. 스마트폰도 꺼져 있고, 노트북도 닫혀 있었으며, 음악조차 틀지 않았다. 책 한 권을 들고, 그 안에만 머무는 시간이 시작됐다. 처음엔 어색했고, 두 페이지마다 멈추고 싶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문장이 문장을 밀어냈고, 생각이 생각을 이끌었다. 그날 내가 책에서 느낀 집중감은 최근 몇 년 동안 경험하지 못한 깊이였다.
기계가 없어서 생긴 집중이 아니라, 기계가 없기 때문에 돌아온 집중이었다. 우리는 본래 집중할 수 있는 인간이었다. 단지, 알림과 피드, 멀티태스킹이 그 능력을 오랜 시간 억눌러왔을 뿐이다. 전자기기를 내려놓은 하루는, 내 안에 남아 있는 집중의 가능성을 다시 꺼내주는 시간이기도 했다. 놀랍게도, 집중력이 돌아오자 감정도 더 섬세하게 돌아왔다. 전자기기를 사용할 때, 우리는 한 화면에서 수십 개의 정보를 빠르게 소비한다. 그 속도는 감정을 느낄 틈을 주지 않는다. 재미있다는 느낌, 슬프다는 생각, 감동, 위로, 불안은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훑고 지나가는’ 것이 되어버린다. 하지만 스마트폰 없이 하루를 보내면, 소설 속 주인공의 감정에 더 깊게 몰입하게 되고 차의 향기나 바람의 온도, 물의 흐름 같은 사소한 감각이 더 크게 와 닿는다. 작은 기억이 큰 감정으로 다시 살아나고 산만함이 걷히면 감정은 제자리를 찾는다. 기계 없이 사는 하루는 생각보다 차분하고, 생각보다 감정적으로 풍요로운 하루였다.
관계의 본질 – 연락하지 않아도 연결되는가?
‘기기 없이 하루를 살아보겠다’는 말을 사전에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다. 그래서 연락이 오면 답장할 수 없었고, 어떤 메시지도 확인할 수 없었다. 결과적으로 나는 하루 동안 세상과 단절된 사람이 되었다. 그 시간 동안 나는 처음으로, ‘연락이 없다는 것’이 반드시 고립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체험했다. 불안은 당연히 있었다. 하지만 그 불안이 지나고 나니, 오히려 한 사람의 존재로서 온전히 단독으로 서 있다는 감각이 밀려왔다. 그 감각은 어쩌면, 우리가 스마트폰 이전 시대에서 늘 유지했던 삶의 기본값이었을지도 모른다. 연락하지 않아도 관계는 유지된다. 오히려 너무 자주, 너무 쉽게 연락하는 삶 속에서는 진짜 정서적 연결이 희미해질 수도 있다. 전자기기를 통해 맺어지는 관계는 간편하지만, 무척 피로하다. 메시지에 빠르게 답장해야 할 것 같은 압박, 단체 대화방에서의 사회적 암묵규칙 메시지를 무시했다는 이유로 관계가 소원해지는 오해, 그리고 SNS에서 ‘읽고도 반응하지 않음’이라는 판단의 부담감. 이 모든 것들이 쌓이면, 연결은 더 이상 위안이 아니라 피로의 근원이 된다. 하루 동안 전자기기 없이 살면서 나는 이런 피로를 처음으로 해방되었다. 연결되지 않는 자유. 보이지 않지만 존재하는 연결. 그리고 느꼈다. 진짜 관계는 즉각적인 반응보다, 신뢰로 유지된다는 것. 그날 밤, 오랜 친구와 직접 만나 저녁을 먹었다. 서로 스마트폰을 가방에 넣고, 어떤 알림도 확인하지 않고, 오직 서로의 말에만 집중했다. 기기 없는 대화는 처음엔 어색했지만, 곧 예전의 ‘진짜 이야기’들이 살아났다. 상대방의 말투와 표정에 집중했고 내가 말을 멈췄을 때의 공백도 두려워하지 않았으며 사소한 말장난에 웃었고, 평소 말하지 못했던 고민을 털어놨다. 그 시간은 메시지 수천 개보다 더 오래 남았다. 전자기기 없는 만남은, 그 자체로 회복이었다.
디지털 없이 살아본 하루, 그날은 나를 회복하는 날이었다. 하루 동안 전자기기 없이 살아보는 것은 생각보다 불편했고, 어색했고, 때로는 불안했다. 하지만 그 하루는 오래 기억에 남을 만큼, 가장 ‘나답게’ 살았던 하루이기도 했다. 시간은 다시 숫자가 아닌 감각이 되었고, 주의력은, 조각이 아니라 흐름이 되었고, 관계는 응답이 아닌 신뢰로 이어졌다. 우리는 기술과 함께 살아간다. 그건 부정할 수 없다. 하지만 가끔은, 기술 없이도 살아볼 필요가 있다. 그 시간은 단절이 아니라, 나에게로 돌아가는 복귀가 되기 때문이다. 이 글을 쓰는 지금, 다시 스마트폰을 켰다. 알림이 쌓여 있었고, 세상은 잘 돌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나도 그 하루 덕분에, 조금 더 중심을 지키며, 다시 이 연결된 세상 속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디지털 없는 하루. 그 하루는, 삶이 얼마나 물리적이고, 감각적이며, 인간적인지를 다시 가르쳐주었다. 그리고 나는 다시 연결되었지만, 더는 연결에 휘둘리지 않는다. 그 하루, 나는 나로서 존재했다. 그리고 이제, 연결 속에서도 조금 더 나답게 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