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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의 독립 서점 순례기 – 책 냄새 나는 도시 여행

by 권산travel 2025. 4. 10.

빠르게 소비되는 여행 속에서 나는 조금 느린 방법을 택했다.
지도를 켜고 유명 관광지를 향해 달려가기보다는, 한적한 골목 끝에 숨겨진 독립 서점을 찾는 일.
유명하지 않아도 좋았다. 오래된 활자 냄새와 나직한 음악, 그리고 낯선 언어로 쓰인 책들이 나를 반겼던 그 공간들. 이건 단순한 책방 탐방이 아니라, 그 도시를 깊이 있게 들여다보는 순례였다.

 

여행과 독서
책 냄새 나는 도시 여행

골목 끝, 작은 우주 – 도시의 독립 서점이 가진 매력

독립 서점은 그 도시의 '개인적인 이야기'다. 대형 체인 서점처럼 깔끔하고 정돈된 분위기 대신, 작고 낡은 선반과 엉성한 진열 속에 진짜 ‘온기’가 담겨 있다.
서점들은 모두 다르게 생겼지만 공통점이 있다. 책을 파는 공간 그 이상이라는 것.

파리의 Shakespeare and Company는 세계 각지의 작가들이 묵고 간 흔적이 가득한 공간이다. 한켠에 놓인 피아노, 누군가 흘려둔 메모, 오래된 타자기. 마치 과거와 현재가 뒤섞인 타임캡슐 같았다.

이곳에서 책을 고르는 건 단순히 글자를 사는 게 아니라, 그 서점만의 ‘이야기’를 함께 담아가는 행위처럼 느껴졌다.

 

언어는 다르지만, 마음은 통하는 순간들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바르셀로나의 독립 서점에서였다.
스페인어에 능숙하지 않았지만, 책 제목만으로도 충분히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책장 사이에서 머뭇거리고 있던 나에게 점원이 다가와 “도움을 드릴까요?”라고 부드럽게 말을 걸어왔다. 영어로 이어진 짧은 대화 속에서, 나는 책에 대한 그의 애정과 서점의 철학을 느낄 수 있었다.

그는 내게 현지 작가의 에세이집을 추천해주었다. “비록 언어는 다르지만, 여행자에게 꼭 필요한 문장이 있을 거예요.”
그 말은 사실이었다. 나중에 번역기를 켜서 문장을 하나씩 해석해 나갔고, 그 안에서 내 여행의 기분과 맞닿은 구절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책을 사는 여행 – 기념품보다 오래 남는 것

사람들은 여행지에서 자석이나 키링 같은 기념품을 산다. 나는 책을 산다.
독립 서점에서 산 책은 그 자체로 여행의 기록이 된다. 커피 얼룩이 묻은 표지, 구겨진 모서리, 그리고 종이봉투에 적힌 서점 이름. 책을 펼칠 때마다 그 서점의 공기, 조명, 음악이 떠오른다.

도쿄에서는 작은 문예잡지를 샀고, 베를린에서는 한 시인의 시집을 골랐다. 리스본에서는 아무 뜻도 모른 채 포르투갈어 동화책을 한 권 샀다.
그 책들은 내 책장 한 켠에 가지런히 꽂혀 있다. 언어는 이해하지 못해도, 그 공간에서 느꼈던 감정만큼은 지금도 선명하다.

 

독립 서점은 하나의 공동체 – 사람들이 머무는 이유

대부분의 독립 서점은 단순히 책을 판매하는 공간이 아니다.
전시회가 열리기도 하고, 작가와의 만남이 이루어지기도 하고, 지역 커뮤니티가 형성되기도 한다.
리스본의 Ler Devagar는 카페와 갤러리, 예술 워크숍이 함께 있는 복합 공간이었다.
낡은 인쇄소 건물 안에 들어서면 천장까지 이어진 책장과 커다란 자전거 조형물이 눈길을 끈다. 책을 읽는 사람, 그림을 그리는 아이, 작업 중인 예술가들까지—그 자체로 하나의 ‘문화’였다.

그곳에 있는 사람들은 꼭 책을 사기 위해 온 게 아니었다. 그 공간이 주는 분위기, 자유로움, 그리고 연결감 때문이었다.
그래서일까. 서점에서 보내는 시간은 항상 조용하지만, 결코 외롭지 않았다.

 

마무리하며, 독립 서점은 여행지의 아주 조용한 구석이다.
번화한 거리에서 벗어나, 마음이 잠시 쉴 수 있는 공간. 책을 통해 언어를 넘어선 공감을 느끼고, 그 도시 사람들과 아주 간접적인 방식으로 연결되는 순간.

이번 여행에서는 총 5개의 독립 서점을 찾았다. 그리고 그곳에서 다섯 권의 책을 골랐다.
그 책들을 다시 펼칠 때마다, 나는 파리의 좁은 골목길을, 도쿄의 비 오는 오후를, 바르셀로나의 따뜻한 햇살을 떠올릴 것이다.

그러니 다음에 또 낯선 도시를 찾게 된다면, 나는 아마 가장 먼저 검색창에 이렇게 쓸 것이다.
“○○ 독립 서점 추천”
그리고 또 다른 이야기를 만나러, 천천히 그 길로 걸어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