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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음악가들

by 권산travel 2025. 4. 10.

사람들은 도시의 얼굴을 건물과 풍경으로 기억한다지만, 나는 소리로 기억한다.
어디선가 들려오던 기타 선율, 골목에서 울려 퍼진 재즈 트럼펫, 해 질 녘 광장에서 들은 낯선 노래.
나는 그 순간들을 모아, 나만의 여행 앨범을 만든다.
이번 여행에서도, 길 위에서 만난 음악가들이 도시를 특별하게 만들어주었다.

버스킹
길 위의 음악가들

음악이 먼저 다가온 순간 – 낯선 도시와 가까워지는 방법

여행을 시작한 지 이틀째 되던 날, 프라하 구시가지 광장에서 길을 잃었다.
지도를 켜도 어딘가 엇갈리는 골목들. 약간 지치고 있었는데, 멀리서 들려오는 첼로 선율이 나를 멈춰 세웠다.
광장 한편에서 두 사람이 클래식 앙상블을 연주하고 있었다. 바흐의 <G선상의 아리아>.

그 순간, 혼란스럽던 길이 갑자기 잔잔해졌다. 사람들의 발걸음도 느려졌고, 하늘도 더 파랗게 보였다.
나는 그 자리에서 한참을 서 있었다. 그리고 그 도시를 좋아하게 됐다.
음악이 먼저 나에게 다가왔고, 그 덕분에 낯선 프라하와 조금 더 가까워질 수 있었다.

 

거리의 작은 무대들

버스커들은 작지만 강력한 존재다. 그들은 거리의 온도를 바꾸고, 발걸음을 멈추게 만들고, 낯선 사람들 사이에 웃음을 만든다.
바르셀로나의 고딕 지구, 골목 어귀에서 기타를 치던 청년은 작은 스피커도 없이 생목으로 노래를 불렀다. 그 음성은 공기 속으로 퍼져 나갔고, 점점 사람들이 모였다.
그는 영어도, 스페인어도 섞어가며 말했다.

“이 도시의 풍경이 음악 같지 않나요? 오늘 하루, 이 음악이 여러분의 사운드트랙이 되길.”

그날 나는 카페도 박물관도 아닌, 그 골목에서 한참을 머물렀다. 그 음악이 바르셀로나 그 자체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길 위에서 들었던 음악은 늘 기억과 함께 저장된다.
도쿄 신주쿠의 복잡한 거리에서 들은 재즈 트리오, 파리 센강 다리 위의 아코디언, 리스본 트램 앞에서 울려 퍼지던 파두.
각 도시에는 그것만의 배경음악이 있다.
버스커가 연주하는 음악은 도시의 순간을 영화처럼 만들어준다.

특히 기억에 남는 건 암스테르담 운하 거리에서 만난 나이 지긋한 색소폰 연주자였다. 그는 비틀즈의 를 연주하고 있었고, 하늘은 흐렸으며, 자전거들이 조용히 지나갔다.
그 장면은 마치 한 편의 단편영화 같았고, 나는 그 음악이 끝날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돌아온 후에도 나는 종종 그 음악을 플레이리스트에 추가해서 듣는다. 그러면 그 거리의 공기, 바람, 내 기분까지 되살아난다.

 

낯선 이들과의 연결 – 음악이 만든 짧지만 진한 인연들

버스킹의 가장 큰 매력은 사람들을 연결하는 힘이다.
언어도, 국적도 모르는 사람들이 노래 하나로 웃고, 박수를 치고, 고개를 끄덕인다.
리스본 알파마 지구의 노천 광장에서 젊은 여성 싱어송라이터가 팝송을 부르기 시작했다. 몇몇 관객이 흥얼거리더니, 결국 다 같이 노래를 따라 불렀다.
심지어 앞에 있던 아이가 리듬에 맞춰 춤을 추기 시작하자, 모두가 웃었다.

그날 나는 옆에 앉은 독일인 커플과 눈을 마주치고, 짧게 “좋은 음악이네요”라고 말했다.
그들은 “이 도시와 딱 어울리는 분위기예요”라고 답했다.
그렇게 음악은 우리를 잠깐이나마 친구로 만들어줬다.

이 인연들은 아주 짧지만, 마음에 오래 남는다.
버스킹은 그런 마법을 가지고 있다.

 

여행이 끝나고 사진은 흐려지지만, 소리는 오래 남는다.
그 도시를 생각하면 여전히 그 거리에서 들었던 기타 소리가 들리고, 첼로의 진한 울림이 귓가에 맴돈다.
길 위의 음악가들은 단순한 거리의 장식이 아니다.
그들은 도시를 살아있게 만드는 예술가들이고, 여행을 더 특별하게 만들어주는 조력자다.

다음에 또 여행을 떠나게 된다면, 나는 아마 제일 먼저 귀를 열 것이다.
그리고 또 누군가의 음악을 따라, 길 위에 멈춰 서겠지.
그 순간을 위해, 나의 여행은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