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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 마트 쇼핑으로 본 로컬 문화 탐방 – 여행자의 진짜 일상 엿보기

by 권산travel 2025. 4. 11.

사람들은 종종 여행의 '진짜 얼굴'을 찾고 싶다고 말한다. 유명한 명소를 보고, 전통 음식을 먹고, 사진에 담긴 풍경을 기억하는 것도 좋지만, 나는 항상 그 나라 사람들의 일상이 시작되는 곳에서 진짜 여행을 느낀다.
그곳은 바로 현지 마트다.

마트는 여행지에서 가장 생활적인 공간이다. 그 나라 사람들이 무심히 고르는 제품들, 진열대에 놓인 가격표, 장을 보는 표정들.
모든 것에서 그 나라의 속도와 취향, 그리고 ‘생활의 결’이 드러난다.
이번 여행에서도 나는 ‘마트’를 빠뜨리지 않았다. 마트 구경은 내 여행에서 가장 소소하면서도 소중한 루틴이다.

 

마켓 구경
현지 마트 쇼핑으로 본 로컬 문화 탐방

장바구니 속 문화 – 그 나라 사람들이 먹고 사는 것

첫 번째로 발을 디딘 마트는 스페인 마드리드의 메르카도나였다.
입구를 들어서자마자 눈에 띈 건, 거대한 햄 진열대. 하몽이 통째로 걸려 있었고, 진공포장된 햄 종류만 해도 30가지가 넘었다.
치즈는 또 얼마나 다양한지. 나는 잠시 멍해질 정도였다.

과일 코너에서는 오렌지와 감귤이 산처럼 쌓여 있었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봉지째 사 가는 걸 보며 “아, 이 나라 사람들은 진짜 과일을 자주 먹는구나” 싶었다.

마트의 장바구니는 그 나라 사람들의 식탁을 그대로 보여준다.
프랑스 마트에서는 버터와 바게트가 넘쳐났고, 일본 마트에서는 도시락 코너와 간편식, 계란말이가 한 진열대를 차지하고 있었다.
특히 인상 깊었던 건 태국의 마트에서 마늘과 고추가 진열대가 아닌 무게 단위 ‘푸대’로 팔리고 있었다는 점.
우리에겐 반찬 하나를 위한 재료일 뿐이지만, 그들에게는 매 끼니 필수라는 것.
마트는 식문화의 축소판이었다.

 

포장지에 담긴 감성 

마트에서 내 시선을 사로잡는 두 번째 포인트는 바로 포장 디자인이다.
사실 내가 제품을 고르는 기준 중 하나는, ‘예쁜 포장’이다. 그리고 놀랍게도, 포장은 그 나라의 감성과 굉장히 닮아 있다.

덴마크 코펜하겐의 마트에서 본 우유팩은 깔끔한 파스텔 컬러에 산뜻한 선형 디자인이 들어가 있었고,
이탈리아에서는 커피 패키지조차 예술 작품처럼 생겼다. 금박이 들어간 라벨, 고풍스러운 로고, 클래식한 타이포그래피.

반면 일본의 과자류 패키지는 정보를 빽빽하게 담고, 귀여운 캐릭터나 마스코트를 활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실용성과 정보 중심의 문화, 그리고 '디테일'을 중시하는 일본인의 성향이 느껴졌다.

이런 포장지들은 그 나라의 미적 기준, 브랜드 철학, 심지어 소비자의 기대까지 보여준다.
그래서 나는 항상 마트에서 제품을 살 때 포장지를 오래 들여다본다.
그건 그냥 과자가 아니라, 디자인으로 읽는 ‘문화의 단면’이기 때문이다.

 

계산대 앞에서 배우는 생활의 리듬

마트에서 가장 흥미로운 공간은 사실 계산대다.
그 짧은 순간, 우리는 그 나라의 ‘사회적 리듬’을 가장 가까이서 관찰할 수 있다.

프랑스 파리의 마트에서는 계산이 아주 느렸다.
손님과 계산원은 자주 농담을 주고받았고, 천천히, 여유롭게 결제가 이루어졌다.
초조하게 기다리던 나는 처음엔 답답했지만, 나중엔 그게 이 나라 사람들의 삶의 속도라는 걸 받아들였다.

반면 일본 마트에서는 극도의 질서와 빠른 속도가 돋보였다.
물건은 정돈된 순서로 옮겨지고, 계산은 정확하며, 고객은 끝까지 허리를 숙여 인사를 나눈다.
그들의 정중함과 체계적인 방식은 계산대라는 아주 짧은 시간 안에도 녹아 있다.

그리고 한국의 마트에선 ‘카드 포인트, 할인쿠폰, 멤버십 앱’ 등 기술 중심의 소비문화가 강하게 느껴진다.
계산대는 단순한 지불의 공간이 아니라, 그 나라 소비자와 시스템의 관계를 보여주는 무대였다.

 

기념품보다 오래 남는 마트 쇼핑의 흔적들

누군가는 여행의 기념품으로 자석이나 엽서를 사지만, 나는 마트에서 산 물건들을 가져온다.
작은 봉지의 허브차, 익숙하지 않은 브랜드의 쿠키, 그리고 생소한 향이 나는 바디워시.
여행이 끝난 후에도 그 물건을 쓰거나 마실 때마다, 그 나라의 냄새와 공기가 함께 떠오른다.

태국에서 사 온 코코넛 과자는 커피와 잘 어울려 아침마다 꺼내 먹었고,
독일에서 샀던 호밀빵 믹스는 친구와 베이킹하는 추억으로 이어졌다.
마트는 ‘관광객’을 위한 공간이 아닌 ‘현지인’을 위한 공간이지만, 바로 그 점이 여행자의 감성을 자극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저렴하다. 실용적이고, 실생활에 녹일 수 있다.
기념품샵에서 파는 전형적인 물건보다 훨씬 더 오래 기억에 남는다.

 


어쩌면 현지 마트는 여행지 중에서 가장 현실적이고, 가장 깊은 공간일지도 모른다.
관광객을 위한 포장 없이, 진짜 사람들의 삶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곳.
그 안에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그 나라 사람들의 취향, 속도, 삶의 태도를 느끼게 된다.

다음 여행에서도 나는 아마 또 마트를 먼저 찾을 것이다.
맛있는 과자를 고르며, 낯선 글씨가 적힌 포장지를 유심히 들여다보며, 사람들의 장바구니를 살펴보며— 그 도시와 더 가까워질 준비를 할 것이다.

여행의 기억은 언제나 예상 밖의 장소에서 더 오래 남는다.
그리고 마트의 냉장 코너 앞에서 문득 멈춰 선 나의 모습이야말로, 여행자라는 정체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순간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