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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어비앤비 호스트와의 대화에서 알게 된 진짜 도시 이야기

by 권산travel 2025. 4. 12.

여행자의 눈이 아닌, 그곳에 사는 사람의 목소리로 도시를 듣다

우리는 흔히 여행을 '보다' 온다고 말한다. 멋진 건물, 유명한 박물관, 인스타에 잘 나오는 거리까지—눈으로 담고, 사진으로 남긴다.
그런데 때로는, 누군가의 이야기 하나가 모든 장면을 새롭게 만들어준다.
그 도시를 살아온 사람의 목소리, 익숙하고 따뜻한 시선.
이번 여행에선 에어비앤비 호스트와의 대화가 그런 순간이었다.
그들과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나는 도시가 가진 표면 아래의 풍경들을 하나씩 마주하게 됐다.

 

유럽의 에어비엔비
진짜 도시 이야기 - 에어비앤비

파리의 호스트, “우리 동네는 파리보다 더 파리 같아요”

파리의 11구에 위치한 오래된 아파트.
나의 호스트는 50대 중반의 프랑수아 씨였다. 그의 첫 마디는 이랬다.

“여행자들은 에펠탑 근처만 보러 오지만, 진짜 파리는 그곳보다 훨씬 더 인간적인 동네들 안에 있어요.”

그는 내가 머무는 이 동네를 하나하나 설명해주었다. 어느 빵집이 진짜 30년 된 제과점이고, 토요일마다 열리는 작은 마르셰(시장)에서는 동네 예술가들이 직접 만든 도자기를 판다고 했다.

“요즘은 파리도 빠르게 변하고 있어요. 하지만 이곳은 여전히 느릿하고, 우리가 기억하는 ‘고전적인 파리’의 감성이 남아 있죠.”

그의 말 덕분에 나는 파리를 완전히 새롭게 보게 되었다.
관광지가 아닌 주민의 삶이 살아 숨 쉬는 공간, 그리고 그곳의 정취를 지키려 애쓰는 사람들의 이야기.

 

도쿄의 호스트, “여기선 누구도 당신을 먼저 보지 않아요”

도쿄 나카메구로의 작은 목조 주택.
내 호스트는 조용하고 친절한 30대 여성, 사야카 씨였다.
첫날 밤 우리는 함께 차를 마시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그녀는 도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여기 사람들은 서로의 사생활을 깊이 존중해요. 그래서 누군가에게 먼저 말을 거는 일은 거의 없어요. 대신, 조용히 응원하는 문화가 있어요.”

이해되지 않았던 일본 거리의 ‘정적’이 그녀의 말 한마디로 정리됐다.
그날 이후, 나는 거리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의 '침묵'을 무관심이 아닌 배려로 받아들이게 됐다.

그녀는 또 말했다.
“그래도 가끔 외로울 때가 있어요. 그래서 저는 에어비앤비 호스트를 해요. 누군가 내 집에 머무르면서 잠깐이라도 서로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잖아요.”

그 순간, 나는 그녀의 공간 안에서 더 이상 낯선 여행자가 아니었다.
작은 대화 하나가 공간을 '집'으로 바꾸는 힘을 느꼈다.

 

리스본의 호스트, “우린 오래된 것들을 지키며 살아가요”

리스본 알파마 지구, 오랜 돌계단 위에 위치한 아파트.
호스트 마르코는 수염이 복슬복슬한 60대의 예술가였다.
그는 집을 소개해주며 벽에 걸린 그림들을 하나하나 설명해주었다. 모두 자기가 직접 그린 도시 풍경들이었다.

“리스본은 느린 도시예요. 기술이나 유행보다, 오래된 감정을 지키는 데 더 많은 에너지를 써요.”

그는 나에게 포르투갈 사람들이 어떤 식으로 하루를 보내는지, 왜 저녁이 되면 광장에서 모두가 춤을 추는지에 대해 이야기해줬다.

“우린 슬픔도 춤으로 풀어요. 파두를 들어봤나요? 그건 우리의 외로움이 음악으로 변한 거예요.”

그와 함께 들은 파두 한 곡. 쓸쓸하면서도 따뜻했고, 그의 목소리처럼 부드럽고 진심이었다.

그 후 나는 리스본을 ‘밝고 낙천적인 도시’로만 보지 않게 되었다.
그 안에 있는 슬픔과 그걸 끌어안는 낭만적인 방식까지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뉴욕의 호스트, “이 도시의 주인은 아무도 아니에요”

브루클린 윌리엄스버그, 고양이 셋이 사는 예술가의 집.
호스트 리나는 젊은 그래픽 디자이너였고, 그의 집에는 책과 음악과 식물이 가득했다.

그녀는 내게 뉴욕을 소개하며 이런 말을 했다.

“여긴 누구든 될 수 있고, 누구도 끝까지 주인이 아니에요.”

뉴욕은 빠르고, 날카롭고, 불친절하다고 느껴졌던 나에게 그녀의 말은 새로운 해석이었다.
“여기서 살아가는 건 생존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가능성의 연속이에요.
매일 누군가가 시작하고, 누군가는 떠나요. 그게 뉴욕이에요.”

그녀는 내가 들고 다니던 노트북을 보며 이렇게 덧붙였다.
“뉴욕은 당신이 뭔가 시작할 준비가 되어 있으면 언제든 자리를 내줘요. 다만, 그 자리를 지킬 수 있는가의 문제지.”

그녀와의 대화는 단순한 도시 소개를 넘어서 삶의 태도에 대한 대화였다.
그리고 그 말들은 지금도 내 일상 속 작은 용기로 남아 있다.

도시의 진짜 얼굴은 사람 속에 있다.
에어비앤비는 단순한 숙소가 아니다.
그곳은 누군가의 ‘삶의 방식’이 담긴 공간이고, 호스트는 도시의 살아 있는 해설자다.

그들과의 짧은 대화 속에서 나는 지도에는 없는 장소를 알게 되었고,
사진으로는 담기지 않는 감정을 공유했다.
무엇보다 그 도시에 사는 사람의 ‘온도’를 느낄 수 있었다.

다음 여행에서도 나는 호텔 대신 에어비앤비를 고를 것이다.
더불어, 낯선 집에 들어서며 내 마음도 조금 더 열어둘 것이다.
그 공간에서, 또 다른 누군가의 도시 이야기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